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만 가설 (문단 편집) ==== 생방송, 의혹, 그리고 아티야의 사망 ==== [[2018년]] [[9월 24일]] HLF 트위터를 통해 [[https://hitsmediaweb.h-its.org/Mediasite/Play/62cdb6229c954146969e472b05ba82761d|스트리밍 주소]]가 공개됐다. 홈페이지는 접속 폭주로 다운됐다. 해당 스트리밍 주소도 접속 폭주로 다운되고 [[https://www.pscp.tv/w/1zqJVLeqXYDKB|새 링크]]를 제공하고 있다. 영상에서의 아티야는, 수학의 역사를 갑자기 늘어놓는 등 발표 45분간 증명의 논지와 관계없이 쓸데없는[* 일반인 기준으로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수학자들 입장에서 증명의 논지나 흐름이 보이지 않고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뜻이다.] 이야기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끝난 이후 브레이크 타임에 참가자의 질문을 받자 아티야는 여전히 본인이 가설을 증명한 게 맞다고 주장했다. [[https://twitter.com/aperiodical/status/1044141957277200384|기사]] 레딧에서는 아티야의 '공개적 망신(public humiliation)'이나 아티야처럼 업적이 뛰어난 전설적인 수학자에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은 포럼을 기획한 organizer의 잘못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부정적인 주장이 강세다. [[https://www.reddit.com/r/math/comments/9igc4d/atiyahs_lecture_on_the_riemann_hypothesis|레딧]] 한국 웹에서는 HLF 역시 책임이 있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성난 목소리도 있었다. 일단 논문과는 별개로 방송 내용만 보면 확실하게 망했다. 원래 정말 본인이 증명한 내용이라면 앞에 역사 얘기를 전혀 할 이유가 없다. 열심히 본인의 증명을 컴퓨터와 화이트보드에 수식을 써가면서 설명해도 '''45분이라는 시간은 엄청 부족할 테니까'''. 참고로 [[앤드루 와일스]]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처음 발표할 때는 동료 수학자에게 증명 전체를 이해시키기 위해 1 대 1 강의를 몇 주 동안 해야만 했고 다른 수학자들 앞에서 한 발표회는 3일에 걸쳐 진행됐는데, 시작부터 끝날 시간까지 수식만 엄청나게 썼다. 그마저도 당장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중에 오류가 발견돼서 그것을 고친 완성본을 논문으로 따로 냈다. 발표 직후 관련된 수학자들의 경우 대부분 [[동료평가|논평]]을 거부했다. 엉망진창인 공개 증명인 게 불 보듯 뻔하고, 아무래도 대선배를 공개 처형하는 듯한 분위기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 다만 굳이 논평을 해보지 않아도 아티야의 증명이 엉터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단지 공개적으로 아티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 섣불리 나서지 않았을 뿐. 으레 예의상 하는 '증명은 되지 않더라도 유용한 연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는 식의 멘트 정도가 있었다. 보통 어떤 증명, 특히 밀레니엄 문제에 올라갈 정도로 난이도 있는 증명에 대한 검증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개월까지 걸릴수도 있지만 이번 건의 경우 애초에 프리프린트부터가 아카이브에서 리젝당했다고도 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연구자가 거의 전무했다. 마이클 아티야를 존경하던 전공자들은 그의 위대한 업적 대신 말년에 망신당한 수학자로 기억될까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아티야 정도 되는 수학자[* '''고대 그리스 이래''' 가장 위대한 수학자를 꼽을 때 아티야는 21세기까지 활동한 학자임에도 감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인 중에 꼽히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동시대에 활동하며 21세기까지 생존한 수학자들 중 아티야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이로는 홀로 현대 대수기하학을 재창조한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정도만이 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그로텐디크는 ~~수학 때려치고 혁명이나 하느라~~ 아티야만큼 평생에 걸쳐 정력적으로 활동한 학자는 아니었다. ]가 저런 발표가 어떤 자리인지,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를 리 없다. 증명 생방송을 보면 아티야가 두서없는 말을 하고 횡설수설거리는 등 정신이상이나 치매가 의심될 지경이었으며, 때문에 일각에서는 "리만 가설이 또 하나의 위대한 수학자를 골로 보냈구나."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마이클 아티야는 2019년 1월 11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수학적인 증명이라고 볼 수 없는 증명을 내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을 봐서는 건강 이상에 따른 해프닝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출간된 [[김민형(수학자)|김민형]] 교수의 책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에서 김민형 교수와 말년의 아티야가 교류하던 이야기가 부고와 같은 형식으로 실려있다. 말년의 리만 가설 소동에 대해 김민형 교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으나, 아티야는 말년에 수학과 물리학을 통합할 수 있는 통일 이론이 존재할 것만 같은 영감에 늘 흥분한 상태였으나 그 열정이 지나치며 수학적 오류를 제법 범해 젊은 수학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고, 수학적 영감만을 중시하느라 구체적 논리의 오류는 중요치 않다는 외골수적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